장세동은 전두환 정부 실세이며 12.12 군사반란의 주동자 중 한명이다. 전라 남도 고흥 출신으로 육사 16기이다. 하나회 멤버로 군사반란 때 반란군의 심장인 수도경비사령부 제30경비단장으로 반란의 핵심 역할을 했다.
장세동 나이 고향 학력 프로필
장세동은 1936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4살 되던 해 서울 동대문구로 이사했다. 서울창신국민학교, 돈암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성동공업중학교 때 6.25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전쟁후 성동공업고등학교에 복학하고 가정현편으로 1956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다.
- 출생 1936년
- 고향 전남 고흥
- 서울창신국민학교
- 서울돈암국민학교
- 성동공업중학교
- 성동공업고등학교
- 육군사관학교 16기
장세동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하나회에 가입한다. 월남전에 파병해 전과를 올린다. 귀국후 육군 수도사단 30경비대대에서 장교로 근무하다가 다시 월남 파병을 가 전두환과 인연을 맺는다.
귀국 후 제1공수특전여단장이었던 전두환 밑에서 심복 역할을 한다. 이후 육군 본부 대통령경호실 경호관을 거쳐 1977년 수도경비사령부 제30경비단장으로 부임한다.
그리고 12.12 군사반란 당시 상관이 장태왕 소장을 명령을 어기고 신군부에 가담하고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체포한다. 이 공로로 준장으로 진급하면서 육군특전사령부의 제3공수특전여단장을 맡는다.
1981년에는 현역 장교 신분으로 대통령경호실장으로 임명된다. 그리고 1984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고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영전한다.
남산의 대통령으로 불리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지만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일어난 6월 항쟁으로 국가안전기획부장에서 물러난다.
통일민주당 창당방해 사건으로 전두환 대신에 감옥에 다녀왔으나 김영삼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로 인해 12.12 군사반란 가담 혐의로 3년 6개월형을 받고 실형을 살았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초구 을에 출마하나 낙선한다.
아직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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